쾨텐 궁정에서 바흐는 6곡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비롯한 그의 대표적인 기악곡의 대다수가 작곡되었다.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풍성한 생활을 반영하는 것처럼 그것들은 밝고 즐거운 표현으로 넘쳐 있었다. 아내가 죽기 전까지는 사생활도 평온해서 바흐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7남매를 얻었다고 한다
바흐의 첫 번째 부인인 마리아 바르바라는 가정을 꾸려나가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였다. 바흐는 아내에게 집안의 거의 모든 일을 맡겼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1720년 아내가 사망하자 바흐는 크나큰 상심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쾨텐 공작 레오폴드를 따라 연주 일정을 소화하고 집에 돌아올 때쯤 아내의 부고를 듣고 황급히 집에 와보니 이미 장례까지 치른 뒤였다고 한다. 장의사가 청구서를 내밀자 바흐는 무심한 말투로 "아내에게 물어보시오..."라고 말했다.
다음해인 1721년, 그는 16세 손아래인 소프라노 가수 안나 막달레나와 재혼하고,
13명의 아이를 얻었다. 합계 20명의 자녀 가운데서 약 절반은 어렸을 때에 사망하였는데,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선천적으로 뛰어난 음악적 재질을 지니고 있었으며, 특히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 차남인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막내아들 요한 크리스티안은 음악사에 이름을 남기는 뛰어난 작곡가로 성장하였다. 두 번째 부인 안나 막달레나 바흐는 바흐 사후 그를 회고하는 수기를 남겼다.
바흐는 모처럼 행복한 음악생활을 하게 된 쾨텐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후술하다시피 그는 6년만에 라이프치히로 옮기게 된다. 그가 약속의 땅 쾨텐을 떠난 이유는 그간 '교회음악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는 종교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는게 대세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좀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후에 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쾨텐의 영주가 결혼한 후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이 사그러들었다는 것, 아들들을 대학에 보내고 싶은데 쾨텐에는 대학이 없었다는 것, 라이프찌히의 급여제안이 상당히 좋았다는 것 등등을 쾨텐을 떠난 이유로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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