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오페라는 아이다.
리골렛토, 라 트라비아타. 일 토레바토레등 불후의 명작은 손 꼽히기가 어려울 정도다.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3대 작곡가 로는 베르디, 푸치니, 롯시니를 손꼽는다.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가 50년간 살면서 이탈리아 오페라를 꽃피운 이탈리아 북중부 시골 마을 부세토에는 베르디 박물관, 베르디극장, 50년간 살았던 근사한 빌라베르디가 있어 이곳 마을은
온통 베르디 뿐이다.
베르디는 이탈리아 북중부 산골 마을 론콜레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가에는 오페라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며 고향사람들이 얼마나 베르디가 자랑스러웠으면 마을 이름도 '론꼴레'에서 베르디가 죽은후에 "론꼴레 베르디"로 고쳐졌을 정도다.
1831년, 오르간 주자 바레치는 베르디를 자택에 입주케 하고 피아노를 가르쳤다.더 훌륭한 음악 선생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해 음악의 도시 밀라노로 보내 그곳 음악원에 입학을 시키려고 하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실력과는 상관없이 입학을 거절당한다. 그러나 그는 3년간 밀라노에 머물며 최고의 극장 일원이던 라비냐 선생을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음악적으로 성숙해진 베르디는 스물한 살에 다시 고향 부세토로 돌아와 그곳에서 음악감독 직을 맡게 되었다. 또한 바레치의 딸 마르케리타와 두 사람이 연탄을 행하고 있는 동안에 미모로 유명한 마르게리타와의 사랑이 싹텄고, 부세토의 음악 감독에 취임한 1836년 5월 그녀와 결혼했다. 그 당시 둘의 나이는 23세로 동갑이었다.
1836년에 장녀 비르지니아와 장남 이치리오가 태어났지만 불행하게도 장남이 태어난지 1개월 후 장녀 비르지니아가 병에 의해서 생후 17개월 만에 죽게 되고, 베르디는 슬픔을 잊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게 된다.
1839년 2월 마르게리타와 어린 이치리오를 데리고 밀라노로 출발했다. 그 무렵 그는 최초의 오페라 '로체스텔'을 작곡하고 밀라노에서 상연하고 싶었으나 좀처럼 실현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유실되어서 오베르토를 최초의 오페라로 간주하고 있다.
당시의 스칼라 극장의 소유자 ‘메렐리’와 서로 알게 되어, 그로부터 직접 의뢰도 받고 다음의 오페라 작곡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아들 이치리오가 1839년 10월 22일 병에 걸려 죽자 슬픔을 달래기 위해 신작 오페라 오베르토 초연에 더욱 힘쓰게 되고 그 결과 대성공하게 되어 14회나 반복 상연되고 스카라 극장이나 빈의 오페라 극장과 계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봄 이탈리아는 음울한 날씨가 계속되었고, 5월 말에는 아내 마르게리타가 수막염으로 쓰러져 6월 19일에 겨우 27세로 사망한다. 그렇게 베르디는 결혼 4년 만에 아내와 아이를 모두 잃었다.
매우 낙담한 베르디는 밀라노를 떠나 부세토에 틀어박혔다. 당시 작곡하고 있었던 것은 '가짜 스타니슬라오'로 1840년 9월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나, 첫날의 실패 때문에 하루 만에 중지되고 만다.
그는 더 이상 오페라를 쓰지 않으려고 했고 자살까지 결의했었다고 한다.
베르디 오페라중 성공했던 '라 트라비아타'
'리골렛토'등이 당시 겪었던 첫사랑과의 갑작스런 이별에 대한 슬픈 시련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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