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ssical music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클라라 슈만"

by 쉰김치 2020. 10. 26.

클라라의 인기에는 빼어난 미모와 우아하고 기품있는 태도도 한몫했다. 하지만 일찌감치 14살경부터 9살 연상의 로베르트 슈만과 사귀기 시작했으며 평생동안 슈만에게 충실했기 때문에 다른 연애를 할 기회는 없었다. 클라라는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슈만과 연인으로 지냈으며 결국 1840년 21살의 나이에 슈만과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한 후 슈만 부부는 서로 음악적 동반자로서 큰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특히 클라라는 남편이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결혼 당시 클라라가 이미 유럽 전역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유명인사였던 반면, 슈만은 북독일 지역에서만 좀 알려진 무명 작곡가에 가까웠으며 출판 사업 등을 벌이느라 나이 30이 될때까지 벌어놓은 돈도 거의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문란한 사생활로도 악명이 높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클라라의 부모 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 결혼이 제대로 유지가 될수 있을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클라라와 슈만은 정말 금슬이 좋은 부부였으며 클라라는 자신의 유명세를 활용해서 유럽 각지에서 남편의 작품을 연주했고, 덕분에 슈만의 음악성이 본격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부인에 버금가는 유명인사가 될 수 있었다.

클라라는 음악적인 동반자였을 뿐만 아니라 남편의 작곡 활동을 도왔다. 특히 슈만은 작곡할 때에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집안일은 모조리 그의 몫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집안 일을 떠맡은 상황에서도 연주활동과 작곡활동도 하는 대단한 모습을 보였다. 결혼 전에 엄친딸이었다가 결혼 후에는 슈퍼맘의 삶을 살았던 것인데, 똑똑했을 뿐만 아니라 타고난 건강체질이었기 때문에 이런 삶이 가능했다. 

하지만 남편 로베르트 슈만이 1854년 2월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서 자살을 시도했으며,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1856년 사망할 때까지 정신병원에 있어야 했다. 그녀는 가장 역할을 할 수 없는 남편을 보살피는 한편 아직 어린 7남매를 길러야 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인지 남편이 쓰러진 이후에는 더 이상 작곡활동을 하지 않는다.

대신 연주활동은 상당히 활발히 했는데, 죽기 5년전인 1891년까지 유럽 각지에서 연주회를 개최했으며 1874년에는 미국에서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youtu.be/Y1z67TKQB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