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토 핏빛 항구의 학살자 - 파이크(광신도,암살자)
젊은 파이크는 여느 빌지워터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학살의 부두에서 밥벌이를 시작했다. 매일같이 바다 밑 깊은 곳에 서식하는 거대한 괴물들을 끌어 올려 부둣가를 따라 늘어선 도살장으로 보내 가공하는 일이었다. 파이크가 일자리를 얻은 곳은 핏빛 항구라는 구역이었다. 쉴 새 없이 붉게 물드는 이곳의 목재 선대를 파도조차 씻어내지 못했기에 붙은 이름이었다.
파이크는 곧 이 일에 익숙해졌다. 끔찍한 작업과 변변찮은 급료 모두 말이다. 선장이나 선원들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고깃덩이를 내어주고는 그 대가로 금화가 두둑이 담긴 주머니를 받아갔다. 그러고는 파이크와 동료들이 그 고깃덩이를 팔기 좋게 토막 내는 것이었다. 호주머니 속의 구리 동전 몇 닢보다 더 나은 대가에 굶주리게 된 파이크는 간신히 배의 선원을 구슬릴 수 있었다. 전통적인 바다뱀 군도의 방식으로 사냥을 나설 만큼 용감한 자는 극히 드물었다. 사냥감에게 뛰어들어 맨손으로 견인용 갈고리를 꽂아야 했고, 살아 있는 동안 도륙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담하고 능숙한 파이크는 곧 최고의 작살잡이로 떠올랐고 몸값은 금으로 된 크라켄 주화 한 닢에 달했다. 그는 더 거대하고 위험한 생물의 특정 기관에 비하면 살코기 따위는 고작 푼돈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산 채로 신선하게 채취해야 하는 내장 말이다.
바다 괴물들의 가격은 사냥의 난이도에 따라 정해졌고 빌지워터의 상인들이 가장 높게 쳐주는 생물은 바로 자울치였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이빨로 가득한 이 물고기의 입안에는 포낭이 여러 개 달려 있는데, 그 안에 든 사파이어 수액을 정제하면 다양한 마법에 사용할 수 있어 부르는 게 값이었음에도 룬테라 전역에서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이 푸른빛을 내는 기름이 담긴 작은 유리병 한 개만으로도 배 열 척과 그만한 선원들을 고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경험 부족한 선장과 떠난 사냥에서 파이크는 자신 앞에 놓인 피비린내 나는 길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항구를 떠난 지 며칠이 지나고, 거대한 자울치 한 마리가 해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쩍 벌어진 거대한 입속으로 줄지어 매달려 있는 사파이어 수액 포낭들이 보였다. 작살 몇 개가 날아가 꽂혔고, 파이크는 한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지금까지 만난 어떤 자울치보다도 크고 오래된 녀석의 입안으로 뛰어들었다.
막 공격을 시작하려던 찰나, 이 생물의 동굴처럼 깊은 목구멍에서 낮은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곧 부글거리는 거품이 해수면 위에서 부서지며 자울치 무리가 나타나서는 작살의 밧줄과 이어져 있는 배의 선체를 밀어붙였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선장은 그만 파이크의 구명줄을 끊어 버리고 말았다. 괴수가 입을 다물기 직전, 이 불행한 작살잡이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광경은 파이크가 산채로 삼켜지는 장면을 지켜보는 동료 선원들의 공포에 찬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파이크의 무덤이 아니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바다 아래,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심해에서 엄청난 압력에 짓눌리면서 여전히 굳게 다물린 자울치의 입속에 갇혀 있던 파이크는 다시 눈을 떴다. 주위에는 푸른 빛이 가득했다. 수천 개의 푸른 빛이 마치 그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고대의 신비한 메아리가 울리며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정신에 침투했다. 파이크는 환영 속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잃는 동안 동료들이 재산을 불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복수와 응징이라는 새로운 갈망이 파이크를 집어삼켰다. 배신자들의 시체로 심해를 채우리라.
처음에는 빌지워터의 모든 이들이 살인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본래 위험한 곳이었기에 이따금 붉은 파도가 밀려온다고 해도 특별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주가 몇 달이 되자 한 가지 공통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잔인하게 살해된 채로 버려진 선장들이 발견되는 것이었다. 술집에서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살인마의 짓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바다에서 버림받은 남자가 공포라는 이름의 저주받은 배에 탑승했던 선원들의 명부를 손에 들고 이들을 처단하며 돌아다닌다는 소문이었다. 한때는 존경과 명성의 상징이었던 "당신, 선장이오?"라는 질문은 이제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곧이어 이 피의 숙청은 누수 기술자부터 일등 항해사, 무역상, 은행원에 이르기까지 학살의 부두와 관련된 모든 자를 대상으로 삼았다. 지명 수배자 명단에는 새로운 이름이 나붙었고, 이 악명 높은 핏빛 항구의 학살자에게 크라켄 주화 천 개라는 현상금이 걸렸다.
아득한 심해의 일그러진 기억에 홀린 채 움직이는 파이크는 수많은 자들이 실패했던 일에 성공했다. 배덕한 사업가들, 살인자들, 해적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불어넣은 것이다. 애초에 공포라는 이름의 배가 빌지워터에 정박한 적이 있었는지조차 아무도 모른다 해도 말이다.
괴물을 사냥한다고 자부했던 도시는 이제 괴물에게 사냥당하고 있다. 파이크는 멈출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