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사랑의 꿈 No.3 - S. 541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음악사에서 내로남불의 주인공들이 몇 명 있습니다. 낭만주의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도 그중 한 명입니다. 매번 남편이 있는 여인을 사랑했으니까요. 물론 이 잘못된 사랑 하나만으로 리스트를 매도해선 절대 안 됩니다. 그러기엔 그가 음악사에서 남긴 위대한 업적들이 너무 많아요. 살아보니 다 별것 아니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던 리스트도 마지막엔 모든 잘못을 뉘우치며 수도자의 길을 걷습니다.
프란츠 리스트(1811~1886).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입니다. 대혜성이 등장한 1811년 정말 그는 혜성처럼 우리 곁에 등장합니다. 지금은 오스트리아 영토지만 당시에는 헝가리 영토였던 라이딩에서 태어난 리스트는 일찍부터 음악가였던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웁니다. 음악 영재의 자질을 보였던 리스트였기에 아버지도 제2의 모차르트를 만들어 보려고 애를 씁니다.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예술적 성공을 위해 파리 사교계로 진출한 그는 그곳에서 운명 같은 연인 마리 다구 백작부인을 만납니다. 그녀는 파리 사교계의 힘 있는 여주인이었습니다. 마리는 처음 리스트를 본 순간부터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마른 몸과 창백한 얼굴의 리스트에겐 예술가에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하나뿐인 생명이며 나의 소원이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입니다.”라고 말했던 리스트. 23살의 용감하고 패기 넘친 리스트에게 반한 그녀는 리스트보다 6살 연상이며 이미 남편과 아이가 있는 유부녀였지만, 뜨거운 사랑의 화염을 이기지 못하고 그와 함께 스위스 바젤(Basel)로 떠납니다. 가정까지 버리며 모든 것을 걸고 선택했던 그 둘의 사랑. 인간의 사랑은 진정 영원하지 않은 걸까요? 처음의 뜨거운 사랑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둘은 서로에게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1844년. 그 둘의 사랑은 세 명의 아이를 남긴 채 이별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는 그렇게 헤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사랑을 합니다.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헤어진 3년 후 리스트는 운명의 두 번째 여인을 만납니다. 역시 유부녀로 러시아의 키예프 연주 때 만났던 카롤리네 폰 자인 비트겐 후작 부인입니다. 그녀는 남편을 버리고 멀리 독일의 바이마르까지 리스트를 찾아옵니다. 그 둘 또한 사랑을 하게 되고 그녀는 남편과의 이혼소송을 시도하지만 끝내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이혼을 허락받지 못해 결혼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이 시기에 리스트가 작곡한 곡이 바로 가곡 ‘사랑의 꿈’입니다.
사랑의 꿈은 모두 3곡으로 각각 1,2 번째 곡은 시인 울란트의 시에 세 번째 곡은 시인 프라일리히라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1번은 <고귀한 사랑-1849년 작곡> 2번은 <가장 행복한 죽음> 3번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입니다. 그중 가장 늦게 작곡된 세 번째 곡만 ‘사랑의 꿈’으로 불리며 자주 연주되는데, 한 남자와 두 여자 사이의 사랑 속에서 아름다운 곡은 탄생하게 된 겁니다.
정말 사랑할 수 있는 한 계속 사랑을 했던 리스트였습니다.